나는 미주대륙 여행을 결심했고, 우연히 서점을 둘러보던 중 시선을 끄는 남미여행기 한권을 발견했다. 제목은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
|
한 커플이 있었다. 남자는 대기업 게임제작사에서 5년을, 여자는 대기업 IT 회사에서 7년을 근무했다. 그들은 결혼한 지 2년 째 되던 해, 회사에 사표를 내고 여행을 떠났다. 괜찮은 직장에 다니며 아쉬울 것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그들. 그들은 여행을 떠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늘처럼 내일을 살고, 내일처럼 모레를 사는 삶이 지겨웠다. 남자는 나날이 얼굴이 어두워져 갔고 나날이 어깨는 쳐지고 있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모습을 모르는 척 지나칠 수 없었다. 행복하고 싶었고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이 여행기는 '그래서 그들이 그곳에서 행복했는가'에 대한 여행기이다.
그들의 여정은 과테말라에서 시작해, 멕시코, 쿠바, 콜롬비아, 볼리비아, 페루, 칠레를 거쳐 아르헨티나에서 끝을 맺는다. 그들은 과테말라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한 오후를 보내고, 쿠바에서 어처구니 없는 물가에 시달리기도 했고, 콜롬비아에서는 강도를 세 번이나 당한 남자를 만나기도 했고, 일주일 내내 우유니 소금사막(볼리비아) 투어를 하기도 했으며, 페루에서느 기차가 아닌 자전거와 두 다리으로 마추픽추까지 갔다.
대부분의 글은 여자에게서, 대부분의 사진은 남자에게서 나왔다.
남자는 말한다. 모니터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시간을 위해 살아왔다고, 여행을 하면서, 그의 하루는 더 이상 가상의 것이 아니라고, 온전한 하루를 살아가는것 같다고.
또 남자는 말한다.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쉽게 사라진다고, 그렇기에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고.
그들은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비장하지 않고도 떠날 수 있음을 느꼈다고. 한동안은 손이 닿는곳에 배낭을 둘 생각이라고. 그들의 여행은 더이상 큰 결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제나 어디서나, 살아가는 순간 순간이 그들에겐 여행이 될 것이다. 그들은 지금 행복할 것이다.
이 책은 내게 여행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주었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나도 언젠가 회사에 사표를 쓰고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나도 역시 시간이 아주 많아서.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1cm art (0) | 2015.11.16 |
---|---|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0) | 2015.10.22 |
어떤 하루 (0) | 2015.10.14 |
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 (0) | 2015.10.13 |
어른은 겁이 많다 (0) | 2015.09.27 |
책은 도끼다 (0) | 2015.09.27 |
여덟 단어 (0) | 2015.08.31 |
나는 나에게 월급을 준다 (0) | 2014.12.26 |